영어 공부도 할겸 개인적인 관심으로 미국법에 관한 자료 검색 중 흥미로운 것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Guido Calabresi 교수와 A. Douglas Melamed 변호사가 Harvard Law Review에 게재한 논문으로 제목이 “Property rules, Liability rules and Inalienability : One view of the Cathedral”입니다.
이 논문의 기본적인 의도는 물권법(Property law)과 불법행위법(Torts law)의 공통 프레임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 대륙법계와는 다른 영미법계의 실용적인 접근법 및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내용을 소개합니다.
1.Entitlement
Entitlement란 뭔가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한 지위라는 정도의 의미로 생각됩니다. 권리라는 의미의 Right와 비슷한 것도 같지만 권리라고 할 때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과 결부되는 뉘앙스가 있는 반면에 Entitlement는 좀더 중립적인 개념으로 보여집니다. 예컨대 누구에게도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는 인정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오염시킬 Entitlement는 법적으로 주어질 수 있지요. 이런 차이점은 환경오염문제의 해결을 위한 프레임에도 영향을 줍니다. 탄소배출권 제도는 Entitlement와 관점에서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권리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판다는 생각을 떠올리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어쨌든 이 Entitlement에 대한 보호의 정도에 관한 세 가지 Rule이 바로 Property rules, Liability rules 그리고 Inalienability rule입니다. 1
2.Property rules
Property rules란 최초에 누군가에게 Entitlement가 부여되면, 그 Entitlement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발적인 거래를 통해 매도인이 동의하는 값으로 사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roperty rules가 적용되는 영역에서 국가는 최초의 Entitlement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가만 결정해주면 나머지는 개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룰이 지켜질 수 있도록 Entitlement를 보호하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죠. 예를 들어 ’건물을 신축한 자가 그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기준을 정해주면 신축 건물의 소유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신축자가 동의하는 값으로 매매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Property rules입니다.
3.Liability rules
Liability rules는 Entitlement의 가치를 당사자의 합의에 두지 않고 국가의 공적 기관에 의해 객관적으로 결정되도록 하고 이 가치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 자가 최초에 부여된 Entitlement를 제거하는 것을 허용하는 룰을 의미합니다. Property rules에서 국가는 최초의 Entitlement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가만 결정하면 되었는데, Liability rules에서는 그 Entitlement의 객관적 가치까지 결정하여야 합니다.Liability rules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예는 수용입니다. 수용자는 소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령이 정하는 보상을 제공하고 토지소유권을 취득할 수가 있죠. 2
4.How can we decide which rule shoud be used to protect entitlement?
두 가지 규칙 중에 어떤 것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논문이 제시하는 기준은 효율성과 분배적 정의입니다. 시장기능을 통해서는 지나치게 거래비용이 큰 경우, 또는 분배적 정의가 필요한 경우, 양자가 모두 고려되는 경우에 Property rules보다는 Liability rules가 적용된다고 봅니다.
논문에서는 수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가령 어느 마을에 공원부지로 쓸만한 땅에 1,000명의 소유자가 있고, 공원이 만들어지면 주변 거주자들 100,000명이 그 이익을 누릴 수 있으며, 그 이익을 위해 100,000원씩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만약 1,000명의 소유자들이 평가하는 자신의 토지의 가치의 합계가 100억원 미만이라면 그 땅들의 소유권을 이전해 공원을 만드는 것이 더 Pareto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소유자들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해 - 가령 합계 20억원 정도는 매수인들이 더 지불할 것으로 짐작하고 자신들이 실제 생각하는 땅의 가치보다 가격을 더 부른다면, 공원을 만들기 위한 토지거래는 발생하지 않고 효율성은 달성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Property rules가 아닌 Liability rules에 따라 집단적 결정(collective determination of value)에 의해 객관적으로 결정된 가치를 보상하고 소유자들로부터 Entitlement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분배적 정의를 고려하여 Liability rules를 적용할 수 있는 문제로는 환경오염 문제를 들고 있습니다. 거래비용이 없거나 매우 작은 경우에는 환경오염 행위자에게 환경오염에 대한 Entitlement를 부여하든 피해자에게 깨끗한 공기에 대한 Entitlement를 부여하든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거래행위를 통해(Property rules) 효율성이 달성됩니다. 하지만 거래비용이 작지 않고 대칭적인 경우, 예컨대 수십개의 공장에서 수만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염물질을 발생시키는 경우에는 자발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거나 시장기능을 통해서는 효율성이 달성되지 않기 때문에 Liability rules에 의해 객관적으로 정해지는 가치의 보상을 통해 최초에 부여된 Entitlement를 제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최초의 Entitlement가 환경오염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법적 사고인데, 이 논문에서는 몇 가지 가정을 통해 환경오염 행위자에게 Entitlement가 주어질 경우 효율성은 물론 배분적 정의도 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저임금 노동자와 싼 석탄을 이용해 저소득층이 주로 소비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매우 부유한 지역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Property rules를 적용하고 Entitlement를 부유한 집 소유자들에게 부여한 경우 : 이때는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이 금지되고 만약 오염물질이 없어짐으로써 얻는 부유한 집 소유자들의 혜택보다 공장이 오염물질을 더 싼 비용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경제적 효율은 달성됩니다. 하지만 배분적 정의는 더 악화됩니다.
Property rules를 적용하고 Entitlement를 공장에게 부여한 경우 : 이때는 배분적 정의는 달성될 수 있을지 몰라도 만약 부유한 집 소유자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공장의 오염 회피비용보다 크다면 효율성은 달성되지 못하고 거래비용 및 holdout problem으로 인해 자발적인 거래도 어렵습니다.
Liability rules를 적용하고 Entitlement를 부유한 집 소유자들에게 부여한 경우 :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은 객관적으로 정해지는 가치의 보상을 통해 가능하지만, 그보다 공장이 사업을 접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것과 같은 배분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Liability rules를 적용하고 Entitlement를 공장에게 부여한 경우 : 이때 오염의 제거로 인해 얻는 혜택이 그 비용보다 크다면 부유한 집 소유자는 오염회피 비용에 해당하는 보상을 공장에게 제공함으로써 오염을 중단시킬 수 있고, 이는 효율성은 물론 배분적 정의도 동시에 달성합니다.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는 분배적 정의가 문제되는 상황에서는 항상 네번째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달리 불법행위의 영역에서도 Entitlement를 가해자에게 줌으로써 경제적 효율 및 배분적 정의를 달성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5.Inalienability
Inalienability는 양도불가능성을 의미합니다. Entitlement의 이전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여기서도 미국적 사고방식으로 그것이 사회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느냐를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로 크게 두 가지, 세분해서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외부효과(Externalities)가 있는 경우와 후견적 개입(paternalism)의 경우입니다. 전자는 금전적으로 평가가능한(monetisability)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moralisms)로 나뉘고, 후자는 self paternalism과 true paternalism으로 나누어집니다. true paternalism의 예로는 미성년자의 행위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있고, self paternalism의 예로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의후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효과의 경우에는 inalienability rules를 적용하는 것이 Pareto efficient하지만, paternalism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3
그리고 Inalienability rules은 효율성 외에도 배분적 정의의 관점에서 그 적용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며, 다만, externalities나 paternalism과 같은 근거를 들지만, 실은 바람직하지 않은 배분적 효과를 위해 Inalienability rules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논문의 내용에 대한 소개는 마침니다.
6.My thoughts
대학에서 불법행위에 관해 배울 때 불법행위법의 목적은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고 배웁니다. 그런데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이중배상의 금지나 손실을 부담할 자를 정하는 규범적 판단에 대한 근거 이외의 어떤 실천적 의미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위 논문은 Entitlement를 보호하는 규칙을 정하는 기준으로 경제적 효율성이라든가 배분적 정의와 같은 실용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다시 말해 불법행위에 관한 판결의 근거 중 하나로 손해의 공평한 부담을 고려했다고 했을 때는 사실상 그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법관의 개인적인 규범적 판단으로 내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 공평의 정의에 관한 개념 정립을 통해 일련의 논증과정을 거쳐 누가 어느 정도의 손해를 부담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인지를 설시한 판결은 본 적이 없을 겁니다. - 하지만 그 근거가 배분적 정의라든지 경제적 효율성이라고 했을 때는 그 전제와 논증과정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논박도 가능합니다.
위에서 든 부유한 지역에 설치된 공장의 예에서 Entitlement를 공장에 부여하고 Liability rules를 적용하여 판결하면서 그 근거를 경제적 효율성과 배분적 정의라고 한다면, 판결문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배분적 정의가 달성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설령 보여주지 않더라도 그 판결의 결과가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한다거나 배분적 정의에도 부합되지 않음을 논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거가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고 하면 판결문에서 그것이 왜 공평한지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보여주더라도 가치관·이념에 대한 논쟁 이상은 어려울 거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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