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단일계약 방식의 아파트에서 세대별 사용량에 대해 주택용 저압요금으로 배분·징수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 문제를 다룬 판례는 아직 없어 보입니다. 단일계약 방식의 아파트에서 관리규약으로 주택용 저압요금으로 배분·징수할 수 없다는 판결(대전지법 2015.6.9선고 2013나20760)이 최근 있었습니다. 판결의 취지는 이 글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2015.7.3 수정).
1. 공동주택 전기요금 배분에 대한 관련 법령
- 주택법 제45조 제3항 : 제1항에 따른 공동주택의 관리주체는 입주자 및 사용자가 납부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용료 등을 입주자 및 사용자를 대행하여 그 사용료 등을 받을 자에게 납부할 수 있다.
- 동법 시행령 제58조 제 3항 : 법 제45조 제3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용료 등"이란 다음 각 호와 같다.전기료(공동으로 사용되는 시설의 전기료를 포함한다)
2. 문제의 핵심 - 전기요금 납부의무는 입주자 공동의 채무인가요, 개인의 채무인가요? 1
이 사안에서 위 주택법령의 관련조문이 없다면 관리규약으로써 전기요금 배분방법을 정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닐겁니다. 왜냐하면 법령상의 관리규약 제•개정 절차를 고려했을 때 사적자치-단체자치의 원칙에 따라 가능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은 전기요금 납부의무가 입주자 공동의 채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만약 입주자 개인의 채무인데 타인인 다른 입주자들의 총의에 따라 그의 채무가 변경될 수 있다면 사적 자치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되죠. 그럼 다시 돌아와서 위 주택법령이 있더라도 전기요금 납부의무가 입주자 공동의 채무인지 각각의 채무인지에 따라 관리규약으로써 전기요금 배분방법을 정할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위 법령의 의미 내지 적용한계가 될 것입니다.
A. 전기공급 계약 당사자의 확정
이 문제는 전기공급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약당사자도 아닌 자에게 계약상 채무를 부담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후의 논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계약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기 전에는 사업주체가 입주자들을 대리해서(1997.11.28선고 96다22365 판결 대한주택공사와의 사실관계 설시 참조),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된 경우에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고객대표로서 계약을 체결합니다. 전자의 경우 참조판례의 사실인정대로라면 계약당사자는 한전과 각 입주자들이 됩니다. 후자의 경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개인이 계약당사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럼 각 입주자들이 계약당사자인지 아니면 입주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비법인사단을 생각할 수 있어 그것이 계약당사자가 되는지 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당사자가 되는지의 문제로 보입니다. 2
1) 입주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비법인사단
비법인사단의 성립요건에 관한 판례의 태도를 보면 우선 의사결정기관과 집행기관이 있어야하는데 의사결정기관이 없습니다. 가령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가 있고 주주총회라는 의사결정기관이 있는데 아파트에는 입주자가 있고 입주자총회와 같은 의사결정기관이 보통 없습니다. 입주자가 아니라 동대표들로 구성된 별개의 비법인사단인 입주자대표회의가 있을 뿐이죠. 그리고 입주자들로 구성된 비법인사단을 생각할 수 있어 계약당사자가 된다고 보더라도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않았을 때 비법인사단의 재산에 대해서만 강제집행이 가능한데 입주자 전원의 총유에 속하는 재산이란게 있을리 만무합니다. 계약상대방인 한전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불합리한 결과이고 현실하고도 맞지않죠.
2) 입주자대표회의
입주자대표회의는 그 구성원이 동대표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기를 공급받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즉 계약상의 권리를 보유하는 자가 아닙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기 전에도 각 입주자들이 계약당사자로서 전기를 공급받았는데 입주자대표회의 구성된 후에는 전기가 입주자대표회의에게 공급된다고 보는 건 이상할 뿐더러 지나친 의제로 보여집니다. 동대표에게만 전기가 공급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후술하는 바와 같이 전기공급약관상의 각종 요금할인제도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당사자인 경우에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3) 소결
결국 일반적으로는 입주자들 각각과 한전이 계약당사자가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겁니다. 상기의 주택법에도 입주자대표회의가 아니라 입주자를 납부의무자로 예정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럼 이 문제는 다수당사자의 채권관계의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중 분할채무인지, 불가분채무인지, 연대채무인지에 관해 별도 항목으로 보겠습니다. 분할채무라면 관리규약으로 배분방법을 정할 것이 없고 불가분채무나 연대채무라면 관리규약으로 배분방법을 정할 필요가 있겠죠. 3
B. 전기요금 납부채무의 성격 - 불가분채무인가요, 분할채무인가요?
1) 공동 전기료 부분
공동 전기요금은 금전채무이긴 하나 불가분적 이익을 향유함에 대한 대가이므로 불가분채무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산업용, 가로등 요금 및 주택용 중 공동전기료 부분은 분할채무는 아닙니다. 채권자인 한전에 대해 입주자별 채무액이 계약에 의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죠.
2) 세대별 사용 전기료 부분
문제는 세대별 사용 전기에 대한 요금이 불가분채무 또는 연대채무인지 분할채무인지에 있습니다. 세대별로 사용한 전기에 대한 요금은 계약 자체에 의해 특정되기 때문입니다. 불가분채무나 연대채무로 본다면 결과적으로 각 입주자들이 아파트 전체 전기요금 전액에 대해 채무를 부담하게 되고 분할채무로 본다면 세대별 사용에 대한 요금은 분할채무지만 나머지 공동전기료는 전액에 대해 불가불채무를 부담합니다.
단일계약방식의 경우 불가분채무 내지 연대채무로 볼 수 있는 요소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세대별 사용량에 대한 요금이 따로 명기되지 않고 평균사용량을 기준으로 요금이 정해진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약관상의 전기요금을 산정한 것이지 그 채무가 불가분채무 또는 연대채무인지 분할채무인지를 결정한 내용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즉 평균사용량으로 요금을 정했다는 사실이 그 채무를 분할하여 부담하는지 연대하여 부담하는지까지도 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관 상의 요금할인 제도 - 저소득층, 다수 구성원 세대, 자동이체, 장애인, 의료장비 사용 등 - 가 세대별로 적용되고 각 세대가 직접 계약상대방인 한전에 신청하여야 한다는 점은 분할채무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즉 하나의 고지서에 적힌 금액은 단순히 평균 사용량에 대한 요금이 아니라 법률적으로는 세대별 사용량 요금인 분할채무액과 전체요금과 분할채무액의 차액인 주택용 공동 전기료에 해당하는 불가분채무액이 섞여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4
그리고 필자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지만 공동전기 사용 부분도 아니고 옆집에서 쓴 전기도 내가 불가분 채무 또는 연대채무를 부담한다는 결론은 쉽사리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세대별 사용 전기료는 분할채무로 보는 것이 현실적 법감정과도 맞는 것이지요.
3) 소결
전기료 채무 중 세대별 사용량에 대한 전기료는 계약에 의해 세대별로 산출 가능하고 요금할인 약관과의 조화, 현실적 법감정을 고려했을 때 분할채무로 봄이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공동 전기료는 계약내용에 의해서는 세대별 채무액이 정해지지 않고 공동의 이익 향유라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불가분채무로 볼 수 있을겁니다.
3. 단일계약 방식에서 주택용 저압요금으로 배분할 경우의 문제점
제1편에서 주된 문제점을 언급하였는데, 이글에서 언급한 요금할인 약관과 관련된 문제점도 적시합니다. 가령 많은 아파트에서 전기요금 자동이체를 하고 있는데 전체 요금액이 아니라 세대별로 요금액의 1%를 할인하도록 약관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그 할인액도 주택용 고압요금을 전제로 계산되어 전체 요금에 이미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대별 요금을 관리규약에서 주택용 저압요금으로 배분하면 세대별 할인율이 1%가 아니게 되죠. 즉 약관에서 정한 내용과 다르게 되는 겁니다. 이는 다른 할인항목도 마찬가지입니다.
4. 결론
입주자들이 한전에 대하여 부담하는 -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하여 부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 전기요금 채무는, 세대별 사용에 대한 요금은 분할채무이지만, 공동 전기료 부분은 불가분채무입니다. 따라서 관리규약으로 그 배분방법을 정할 수 있는 전기료는 공동 전기료 부분이고 세대별 사용에 대한 전기료는 분할채무로서 입주자 각각에 이미 귀속되어 있다고 판단됩니다. 관리규약으로써 분할채무액까지도 조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사적자치의 원칙에 반합니다. 따라서 단일계약방식에서 관리규약으로 배분방법을 정할 수 있는 범위는 공동 전기료에 한하고 관련 주택법령도 그렇게 해석하는 한도에서 민법의 기본원칙에 부합됩니다. 즉 세대별 사용 전기료는 전기공급계약에서 주택용 고압전력을 적용하여 산출되는 분할채무이기 때문에 관리규약으로 주택용 저압요금으로 변경하여 각 입주자들에게 배분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 이 글을 처음 썼던 2016년 7월 28일경에는 이 글처럼 생각하였으나 이후 이 부분에 대한 견해를 변경하였습니다. 이에 관하여는 인권과 정의 제485호에 논문으로 발표하였습니다. [본문으로]
- 관리주체는 계약상 권리인 전기를 공급받는 당사자도 아니고, 관련조문인 주택법 제45조 제3항에 의해서도 전기료 납부를 대행할 수 있을 뿐이므로 당연히 계약당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 입주자들과 관리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는 전기료에 관하여는 채권채무관계가 없습니다. 관리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대위변제한 부분이 있다면 구상금 채권채무 관계가 발생하고 관리규약에 따라 배분된 금액을 관리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고지하였다고 하여 그에 해당하는 전기료 채권을 가지는 것이 아님은 당연합니다. [본문으로]
- 약관으로 정해진 합의에 따라 채무자의 신청에 의해 채무액이 결정된 것을 채권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인 연대채무의 일부면제로 볼 수도 없지만 설령 일부면제로 보더라도 부담부분에 관해 다른 연대채무자에 대해서도 절대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보는 것은 사회적 배려에 의한 요금할인 제도의 취지와는 맞지않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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