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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칼럼

법인과 유한책임의 관계

by 최은석 변호사 2020. 2. 14.

일반인을 포함하여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법인은 그 구성원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법인격이 있으므로 법인의 책임과 구성원의 책임은 논리적으로 분리된다는 사고를 아마도 일반적으로(?) 갖고 있을 것입니다. 본인도 그랬는데 史實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하의 글은 필자의 논문의 초고에 있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인데, 편집과정에서 옮기는 기술적 능력의 부족으로 각주는 제거되고 참고문헌만 남게 되었습니다.

가. 역사적 배경

도그마를 사물논리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반론의 여지가 없는 개념이라고 이해한다면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이 그것에 근접하려 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법인을 법률상 독자적 인격체로 인정함에 따른 논리적 귀결로서 법인의 구성원은 특별한 법규정이 없는 한 법인의 채무에 대해 별도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관념에 기초한 주장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반드시 당연한 전제는 아니다. 영국과 미국의 주식회사법의 발달과정을 보면 법인의 유한책임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 영국의 발전 과정

우선 영국의 경우 1720년의 거품법이 입법에 의한 최초의 회사법이다. 거품법이 제정된 배경은 독점적 무역권을 대가로 영국정부의 채무를 인수한 남해회사가 그 채권과 자사의 주식을 교환하였는데 수익이 부진하였으므로 신주를 발행하여 배당금을 지급하거나 주식매수대금을 무이자로 대여하는 등의 사기적 방법으로 주가를 부양하였다. 그러자 많은 유사회사들이 설립되어 주식투자의 광풍이 불었다. 이에 남해회사는 허가받지 않은 회사의 주식발행을 금지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였는데 그것이 거품법이다. 거품법 제정 이후 그 입법의도가 알려지자 주가가 대폭락하였고, 결국 남해회사는 파산하였다. 이후 영국인들은 주식회사에 대한 강한 불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품법은 1825년 폐지되었고 1844년 주식회사등기법이 제정되어 준칙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1844년 주식회사[등기]법에서는 주식회사제도의 핵심적 요소의 하나인 사원의 유한책임(limited liability)제도는 도입되지 아니하였다. …… 1855년 유한책임법(Limited Liability Act)이 제정됨으로써 현대적 주식회사의 속성이 마침내 법적으로 완결되었다. …… 오늘날에도 영국에서는 회사는 정관에서 주주의 유한책임을 명확하게 명시하여야 한다. … 유한책임법은 결과적으로 법인회사의 조합적 성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한책임이 갖는 비윤리적 경영으로 대형 회사들은 주식회사제도의 활용을 기피하였다. 오히려 유한책임은 소유자가 회사를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소규모 회사 및 주로 1인회사가 이용하는 회사형태로 전락하였다. 이는 영국이 다른 대부분의 유럽국가나 미국과는 달리 합자회사제도를 도입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Boyd Hilton]는 유한책임제도가 정치 및 사회제도의 이성적 진보가 낳은 필연적인 산물이 아니라,특정한 이념적 태도를 보유한 정부의 정책적 선택의 귀결이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주식회사의 핵심 중 하나로 관념되는 주주의 유한책임은 단지 입법의 결과이고 논리적 추론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위 인용문에서 본 바와 같이 주식회사법 제정 이후 초기에 대형회사들은 주식회사제도의 활용을 기피하고 소유자가 회사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소규모 회사나 주로 19세기말까지는 1인회사가 유한책임제도를 이용하였다는 점과 5년 이상 존속하는 주식회사의 수가 절반 이상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주식회사인 소규모 회사 또는 1인회사와 거래하는 상대방 가운데 확률적으로 절반 이상은 주식회사인 거래처의 폐업으로 인한 손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2) 미국의 발전과정

미국의 경우, 1855년에야 비로소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제도가 인정되었던 영국에 비해 각 주마다 상당한 시기의 편차는 있지만, 코네티컷 1818년, 뉴햄프셔 1816년, 메인은 1820년, 로드 아일랜드는 1847년 등으로 대체로 19세기 전반이었고, 도입의 방식도 뉴욕주처럼 1810년부터 도입하였지만, 10만 달러 이하 자본금의 회사로 제한한 경우, 펜실베니아처럼 입법에서 아예 침묵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초기 산업화 이후에 경제적·정치적 압력에 의해 유한책임 제도가 마련된 것이며 법인격 개념의 자연스런 결론으로 도입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메사추세츠의 유한책임 발전 과정을 보면, 1809년 일반 제조회사의 회사설립 특허 신청이 급증하면서 Manufacturing Corporation Act를 제정해 모든 일반 제조회사에 구성원의 무한책임을 명시하고 그 요건에 맞게 특허하였다. 그후 1829년 11월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던 상황에서 많은 수의 제조업 기업가들이 유한책임제를 실시할 것을 청원하고 당시 주지사였던 Levi Lincoln도 유한책임제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사정에서 1830년 2월 주주의 무한책임을 폐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전면적인 폐지는 아니었고, 창립총회 때 정해진 자본금이 전부 납입되고 그 증명서가 제출된 이후에 무한책임에서 해방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매년 주주의 회사에 대한 모든 미납금의 보고서를 발행하지 않거나 자본에서 배당금을 지급한 경우에는 유한책임이 부인되었다. 한편 1851년 제조업, 광업 등 4개 분야에 대해 3인 이상이 20만 달러 이하의 자본금을 출자하는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법인격을 갖도록 하는 준칙주의가 도입되었는데, 그때 회사 설립시 주금의 전액 납입주의도 폐지되었다.

그러나 유한책임 제도의 도입 결과로 대규모 자본 집적이 유발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메사추세츠의 경우 19세기 전반에도 몇몇의 Mill Company의 주식이 유통되긴 했지만, 동세기말까지도 주로 철도 증권 거래가 대부분이었고, 1890년대 투자은행이 산업자본과 결합하여 유가증권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일반 대중에 의한 대규모의 투자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과 유사하게 메사츄세츠의 경우 공공적 성격이 없는 일반제조업에 유한책임 제도를 도입한 1830년 이후 50년간 대부분의 회사는 소규모 회사였다고 한다. 한 가지 미국의 특이한 케이스는 캘리포니아인데 1849년부터 1931년까지 비율적 무한책임제도(pro rata shareholder liability)가 있었다는 점이다. 내용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주주의 주식소유 비율에 따라 회사 채권자에게 직접적인 주채무를 부담하는 것이 골자다.

다음으로 이런 역사적 배경하에서 어떤 논거로 유한책임 제도를 주장했고 설명했는지 살펴본다. 유한책임 제도의 도입으로 초래될 것으로 예상되는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유한책임의 주식회사 제도를 수용하게 한 긍정의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비용인 부작용을 상쇄할 만한 긍정적 효용이 발견되지 않는 영역에까지 유한책임 제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 비효율을 유발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이론적 근거

1) 입법을 둘러싼 논쟁

가) 영국에서의 논쟁

영국에서는 주식회사법의 제정과 관련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영국에서 유한책임제의 찬반 논쟁은 대개 모든 기업에 유한책임을 인정하려는 측과 반공익적(半公益的) 성격의 기업에 국한해야 한다는 측의 대립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에 관한 근본적인 사상적 대립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주의 경제론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회주의 경제론에 기반한다. 유한책임제도를 통해 노동자와 같은 중산층에도 자본의 투자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자본의 사회화를 이루는데에 기여한다는 것이 맑시즘의 사고인 반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경영의 태만을 초래하지만 대자본을 요하는 규모의 경제에 수반된 사업에 잠재적 효용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담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이는 자본시장이 상인자본에서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이행하는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외 유한책임 찬성론자의 주장으로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유한책임 제도하에서는 기업의 자본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신용의 제공이 그것에 의해 제한되지만, 무한책임 제도에서는 모호하고 종종 매우 사실과 다른 자본의 추정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반대하는 근거로 추가할 수 있는 것은 독점시장화 및 대기업의 횡포, 주주의 역할이 기업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투자가에 국한됨으로써 주식회사가 나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되어 종교적 부도덕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요컨대 유한책임제의 비효용은 도덕적 해이와 독점시장화, 효용은 규모의 경제와 적정 수준의 신용 공급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 미국에서의 논쟁

미국의 경우에도 찬반 논쟁이 있었는데 찬성하는 입장은 무한책임제로 인해 자기 주의 자본이 유한책임제를 실시하는 다른 주로 이탈한다는 주장(Flight-of-Capital Thesis), 무한책임제하에서는 자신의 채무를 변제한 주주가 역시 회사채권자로서 다른 주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게 되면 순환론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주장, 무한책임제는 기업자산의 가치 이상으로 신용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경영진이 무모하게 지출하도록 하는 유인이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한책임제의 도입을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의 영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재산, 납세의무와 결부되지 않은 보통선거의 도입, 정부의 경제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유 방임주의(Laissez-Faire)를 옹호하면서, 엘리트가 아닌 보통사람의 정부에의 참여 확대를 주장하는 잭슨 시기(Jacksonian era : 1830-1850)의 사상적 영향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한책임제일 경우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극소수의 자산가만이 자본투자가 가능한데 반해, 유한책임제에서는 중산층도 정치참여의 확대 기조와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법인격 부여는 독점시장을 가짐을 의미했는데, 반대 견해는 거기에 대해 유한책임의 특권까지 부여한다는 것은 정직하고 신뢰하는 대중에 대한 사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주주가 누구인지 공개된다 하더라도 어떤 주주도 주금 이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반 대중이 숨겨진 채무가 있는지, 그 성격과 금액은 얼마인지를 알 것이며, 또 어떻게 그 회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자본을 분할해서 매각하는 것을 누가 알 수 있는가라고 주장하였다.

2) 사법적 판단

입법 논쟁 이외에 이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가) 영국의 사례

영국의 리딩케이스는 Edmonds v. Brown & Tillard, 83 Eng. Rep. 385 (1668) 사건과 Salmon v. The Hamborough Co., 22 Eng. Rep. 763 (1671) 사건이 있다. Edmonds case는 Woodmongers라는 회사를 비롯한 몇 개의 회사가 회사의 명의로 원고인 Edmonds로부터 500 파운드를 빌렸는데, Woodmongers라는 법인인 회사가 갚지 못하고 해산하자, 동사의 대표였던 피고들을 상대로 청구한 사건이다. 피고들은 계약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서명했다는 항변(non est fact)을 하였고 - 보통의 경우처럼 대표자로서 서명을 한 것임 - 법원은 회사 명의로 채무를 부담한 것이므로 소송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사건이다. Salmon case는 The Hamborough라는 법인 회사가 수출상품인 옷감과 그 구성원에 대한 금전 납부의무 부과를 통해 매년 8천 파운드를 모으고, 그 신용으로 막대한 대출을 받았는데 원고인 Dr. Salmon도 2천 파운드를 대여하였다. 그런데 회사에 갚을 자금이 없자 Dr. Salmon은 전처럼 구성원들에게 자금(Assessments)를 받아 상환하라고 요구하였는데 그럴 권한이 없다며 피고들이 거절하였다. 이에 원고가 The Hamborough회사 및 여러 명의 기명 구성원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가 기각되었는데, 청원을 통해 형평법에 따라 The Hamborough의 대표자, 부대표자, 구성원들은 금전납부의무를 부과하는 의결을 하여 그 돈으로 원고에게 상환하고, 그러한 의결을 하지 않을 경우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부담부분에 대해 원고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판결이 내려진 사건이다. Edmonds 판결에 대해서는 해산 이후의 사안이므로 유한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고, Salmon 판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무한책임을 인정한 것인지 유한책임을 인정한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갈린다.

그리고 1855년 유한책임법이 제정된 이후의 판결로는 Salomon v. Salomon Co., 1897 A.C. 22 (1896)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Salomon이 개인사업자로 가죽 및 부츠 도매사업을 하다가 장사가 잘 되자, 유한책임을 지는 회사의 형태로 하기 위해 Aron Salomon and Company, Limited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사업을 양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6명의 가족이 그 회사의 주식을 1주씩 보유하고 나머지는 Salomon이 모두 보유하였다. 회사가 지불할 양수대금 중 일부인 10만 파운드는 debenture라고 하는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하는 장기 고정금리 유가증권을 지급하는 것으로 약정하였고 Salomon에게 교부되었다. 그러나 약 열흘 뒤 그의 요청에 의해 발행이 취소되고, 그에게 5천 파운드를 대여해준 Edmund Borderip이란 사람에게 10만 파운드의 debenture를 8%의 이자율로 자기 자신(Salomon)을 수익자로 하여 발행해 교부하였고, 대여받은 돈은 곧 10%의 이자율로 다시 회사에 대여하였다. 그 후 회사가 이자의 지급을 연체하자 Borderip이 회사 재산에 집행을 신청하였는데, 그의 채무를 변제하고 나면 남는 자산이 약 1,055 파운드였다. 이에 Salomon이 debenture에 대한 수익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여 무담보의 일반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것을 주장하였고 그것을 인용한 사건이다. 이 판결은 재앙적 결정(calamitous decision) 또는 Statutes of Frauds가 300년 동안 상사거래의 염결성을 갉아먹은 것보다 더 많이 60년 동안 갉아먹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 미국의 사례

미국의 경우는 Wood v. Dummer, 3 Mas. 308 (1824)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그 사실관계를 보면 1813년 1월과 10월 Hallowell and Augusta Bank라는 은행의 주주총회에서 각각 자본의 50%, 25% 합계 75%를 배당금으로 지급하기로 하는 의결이 있었다. 사실 나머지 25%도 실제로 납입된 적이 없고, 주주들이 발행한 stock notes라는 것에 의해 담보되어 있을 뿐이었다. 한편, 원고는 1814년 2만9천 달러 이상에 해당하는 동 은행의 은행권을 제시했는데 지급이 거절되었고, 당시 은행은 stock notes 외에 약 9만 달러의 부채가 더 있었다. 이에 원고가 배당금을 받은 주주들을 상대로 채무액만큼 반환하라고 청구한 사건이다. 법원은 특허장은 주주의 책임을 면하게하고 자본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면서 피고들이 지급받은 배당금 중 전체 주식수 대비 소유 주식수의 비율만큼만 반환하도록 판결하였다.

그 이전의 판결로는 Commonwealth v. Blue-Hill Turnpike Corp., 5 Mass 420 (1809) 케이스가 있다. 여기서는 Blue-Hill Turnpike Corp.이 도로를 내기 위해 Jeffrey라는 사람의 토지를 수용하여 1,850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는데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6개월 이내에 회사가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그 발기인의 개인재산에 대해 집행할 수 있는 영장을 발부할 것이 법원에서 결정되었다. 그 명령에 회사가 이의하여 일종의 재심이 이루어진 사건인데, 상급심은 turnpike corporations에 관한 여러 법률들에 비추어 수용위원회에 의해 배상이 결정되든 배심원에 의해 결정되든 똑같이 회사의 재산만으로 토지소유자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하여 하급심의 명령을 파기하였다.

다. 법인성과 유한책임의 단절

영국과 미국의 유한책임 제도의 도입 역사를 보면 그것이 단순히 법이론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른 정책 결정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 당시 주식회사의 법인성을 근거로 유한책임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처음부터 나오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된다. 영국과 미국의 사법적 판단에서 보듯이 그때 이미 법인이 구성원과 별개의 존재라는 인식은 확립되어 있었고, 그로부터 구성원의 유한책임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별개라는 점은 암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에서 법인 주식회사(corporation)의 권리의무는 의회가 승인하는 특허장(charter)의 내용에 달려있었는데, 유한책임을 명시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영국은 대부분의 경우에 침묵하고 있었고, 미국은 메릴랜드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직접적 무한책임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즉 법인 주식회사(corporation)의 권리의무는 특허장의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고 인식하던 상황에서 특허장(charter)이 법률(Act)로 이행되는 과정의 논쟁이었기 때문에 회사법인체 이론(corporate entity doctrine) 따위로 의회에서 논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실에서도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산업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의 형태는 소규모의 조합적 형태였다.

그리고 유한책임 자체가 법인격을 전제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국의 경우 당시 대부분의 회사 형태였던 회사설립증서에 의한 회사들은 회사명 뒤에 “Limited”라는 단어를 붙이고 계약에 유한책임 조항을 둠으로써 유한책임을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그 법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상거래 관행이었는데 이처럼 비법인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특허장(charter)의 획득과 마찬가지의 유한책임의 이익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인이기 때문에 유한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또 미국의 경우에도 1786년에 뉴욕주에서 법인이 아니었던 철강제조업자 협회에 1년간 유한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게다가 유한책임 제도 자체는 로마법에까지 연원을 두고서 중세의 조합적 계약체인 코멘다(Commenda)가 출연한 11세기 이탈리아에서부터 유래하여, 법인이라고 하는 테크닉이 발명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따라서 주식회사의 독립된 법인격을 전제로 구성원의 유한책임이라는 것을 설령 관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유한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는 입법적·정책적 결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법인성과 구성원의 유한책임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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